이사를 앞두고 짐을 줄이며

On Letting Go

ESSAYVol.112026.04.02

이사를 두 주 앞두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. 처음 이틀은 순조로웠다. 안 쓰는 그릇, 사이즈가 안 맞는 옷, 설명서만 남은 가전. 버리기 쉬운 것들이었다.

사흘째부터가 문제였다. 쓰지 않지만 버릴 수 없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다. 십 년 전에 받은 편지, 다 쓴 수첩, 한 번도 켜지 않은 향초.

상자에 담긴 오래된 편지들

버릴 수 없는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하려니 대부분 비슷했다.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, 버리면 그 시간이 없던 일이 될 것 같아서였다.

결국 상자 하나를 정해 두고 거기 들어가는 만큼만 남기기로 했다. 상자에 넣을 것을 고르는 일은 버릴 것을 고르는 일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.

남긴 것들 중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도 있고, 못 남긴 것 중에는 중요한 것도 있었다. 기준은 끝까지 세워지지 않았다.

새집에 와서 그 상자를 아직 열지 않았다. 언제 열지도 정하지 않았다.

에디터 서지완